마음에 드는 시

바람의 음역 - 파계사 계곡에서 / 박현수

주선화 2021. 12. 7. 10:45

바람의 음역

ㅡ파계사 계곡에서

 

ㅡ박현수

 

 

바람의 전언은

너무 커서

계곡에 담을 수 없다

그저 온몸으로 맞을 뿐

홍가시나무도 황조롱이도 온몸을 맡길 뿐

 

나는 육신에 너무 오래 끌려다녔다

몸의 언어를

오독한 탓이다

발정 난 수캐처럼

이 술집 저 술집 떠돌아도

숙취의 다음 페이지는 읽히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시를 오래 잊었다는 생각을 한다

허공을 킁킁대며

너무 멀리 걸어왔으므로

내가 겪은 난독도

그저 주어진 것이려니 생각한다

 

파계사 골짜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저 폭넓은 음역

일제히

귀 기울이는 느릅나무들

제 귀퉁이로 응답하는 집들

사람의 귀만

알 듯 말 듯 발화점 근처에서 맴돈다

 

카페 밖에 놓인

흔들의자가 제 이름으로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