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觀光) 해상도 / 김지연
관광(觀光) 해상도
ㅡ김지연
문을 열자 바깥이 쏟아졌다
텅텅 빈 정면
미친 듯이 펼쳐지는 풀밭
건물도 없고 나무도 없이
맞은편 없이
온통 훤하고 막연한
투명한 시야
빛의 바깥은 서로의 그림자밖에 없고
무엇을 마주 보려면 서로를 돌아봐야지
여기 이 활짝 핀 꽃 좀 봐
이름을 모르고 생김새도 낯선 것
무슨 꽃이지?
그래도 꽃이지?
그래 피어 있으니까
꽃 옆에 앉아봐
역광이라 얼굴이 안 나올 거야
얼굴을 사랑하게 되자 빛을 등지는 편이 좋았습니다
등 뒤가 빛이 있을 자리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기 이렇게 방향 없이 광원 없이
맹목적으로
사방에 쏟아지는
빛
집으로 돌아가 작은 창문을 등지고
작은 개의 발을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이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반투명과 투명 사이의 긴장* 속에
눈에 익은 어둑함 속에 앉아 있다면
어린아이처럼 사는 것과 노인처럼 사는 것은 아주 비슷하구나
머리를 빗겨주는 사람 앞에 앉아
목에 힘을 빼고
빗은 머리를 깨끗한 베개에 누이고
티셔츠에는 잠든 개의 코 모양대로 젖은 얼룩을 달고서
백 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 나무에 핀 꽃을 올려다보고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 속에 있었습니다
창밖에 뭐가 있는 것 같아
어른거리는 것을 본 것 같아요
아가 정말 무서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여기엔 집도 없고
작은 창문도 커튼도 없고
긴장도 없이
투명하게 터지고 흩뿌려지는 세계
사랑하는 얼굴이 생기자 빛을 등지는 편이 좋았습니다
이 밝음이 눈에 익기를 기다리기엔 저는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천지에 널린 빛이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분별없이 투명으로
무너뜨리네
*양해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