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관광(觀光) 해상도 / 김지연

주선화 2021. 12. 14. 10:08

관광(觀光) 해상도

 

ㅡ김지연

 

 

문을 열자 바깥이 쏟아졌다

 

텅텅 빈 정면

미친 듯이 펼쳐지는 풀밭

건물도 없고 나무도 없이

맞은편 없이

온통 훤하고 막연한

투명한 시야

 

빛의 바깥은 서로의 그림자밖에 없고

무엇을 마주 보려면 서로를 돌아봐야지

 

여기 이 활짝 핀 꽃 좀 봐

 

이름을 모르고 생김새도 낯선 것

무슨 꽃이지?

그래도 꽃이지?

그래 피어 있으니까

꽃 옆에 앉아봐

역광이라 얼굴이 안 나올 거야

 

얼굴을 사랑하게 되자 빛을 등지는 편이 좋았습니다

등 뒤가 빛이 있을 자리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기 이렇게 방향 없이 광원 없이

맹목적으로

사방에 쏟아지는

 

집으로 돌아가 작은 창문을 등지고

작은 개의 발을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이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반투명과 투명 사이의 긴장* 속에

눈에 익은 어둑함 속에 앉아 있다면

 

어린아이처럼 사는 것과 노인처럼 사는 것은 아주 비슷하구나

머리를 빗겨주는 사람 앞에 앉아

목에 힘을 빼고

빗은 머리를 깨끗한 베개에 누이고

티셔츠에는 잠든 개의 코 모양대로 젖은 얼룩을 달고서

백 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 나무에 핀 꽃을 올려다보고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 속에 있었습니다

 

창밖에 뭐가 있는 것 같아

어른거리는 것을 본 것 같아요

 

아가 정말 무서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여기엔 집도 없고

작은 창문도 커튼도 없고

긴장도 없이

투명하게 터지고 흩뿌려지는 세계

 

사랑하는 얼굴이 생기자 빛을 등지는 편이 좋았습니다

이 밝음이 눈에 익기를 기다리기엔 저는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천지에 널린 빛이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분별없이 투명으로

무너뜨리네

 

*양해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