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없는 방 (외 1편) / 류흔
주선화
2022. 1. 14. 10:00
없는 방
ㅡ류흔
아랫목에
방이 들어와 앉는다
밥상을 받고
고독을 씹는다 고독은
달콤하다 고독만큼
맛있는 것이 있을까
상을 물리자
방이 따라 나간다
빈 아랫목에
침묵이 앉는다 침묵은
조용한 치열(熾烈),
무서운 문장이 장소를 갉아먹고 있다
방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사는 삶에 의연해질 때까지
방은 그럴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방을 그리워하며
방에 앉아있다 아랫목에 앉아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창문을 가려 낮을 재우고
입술 안에 말을 가두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표정 연습
아침이다
얼굴에 표정을 붓고
주물주물 주물러서
주물을 뜬다
이것은 곧 굳겠지
이것으로 가면을 만들어
쓴다
이로써 나와의 관계가 이룩된다
굳센 성기처럼 주름을 펴고
어깨를 펴고
빤빤히 표정을 연습해
내면을 비울수록
자세가 당당해지지
자세히 보면
자세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얼굴에도 자세가 있으며
사회에 가까운 얼굴일수록
가면이 필수다 그러니
써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