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먼 것이거나 눈먼 / 박지웅

주선화 2022. 2. 14. 11:09

먼 것이거나 눈먼

 

ㅡ박지웅

 

 

접은 종이를 입술 사이에 끼웠다 떼자 입술이 종이에 떨어졌다 먹어 봐 맜있어

 

빨갛게 웃는

불길

 

소금밭 위에 쌓여 있던 구름이 기어이 쏟아졌다

눈, 눈, 눈, 솟았다가 희미하게 떠도는

 

루즈는 손에 쥔 눈뭉치를 보여주고 귓속말을 했다 죽어서도 신호를······유쾌하지 않았지만 축제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종이 위에서 입술이 여전히 웃고 있다

 

내 얼굴 옆에 있는 내 얼굴 흰 새들이 앉아 있는 내 얼굴

모두가 멀어지는, 더듬어본다, 아무것도 없는 얼굴의 땅, 내가 매일 아침 세상에서 깨어나 깨는 곳,

나에 대해서 불쾌한 내가 입을 다무는 곳

 

흰 것은 먼 것이거나 머나먼 곳이어서

내 맞은편은 온통 굳게 다문 흰 쪽뿐이어서

흰 땅에는 자주 쿵쿵거리는 소리, 낡은 가방을 맨 내가 오래전에 배달했던 그 편지 묶음을 또다시 들고 지하로 내려오는 

소리

 

루즈는 눈밭에서 주섬주섬 눈덩이를 모은다 눈 바닥이 일어나 앉아 저를 두드려 만든 이와 마주선다 루즈가 눈사람에게

말한다 나는 가까운 것을 믿지 않아요 나는 먼 것을 믿어요

 

편지를 뜯자 

불행한 영혼들의 눈, 사랑하고 물러선 것들의 눈

눈, 눈, 눈먼 속엣말 펑펑 쏟아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