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물의 포옹 / 김혜순

주선화 2022. 3. 7. 11:04

물의 포옹

 

ㅡ김혜순

 

 

우리가 벗어놓은 뼈가 강변의 헐벗은

저 포플라나무처럼 서 있다

여기를 지나다가 언제 건넜던 강이든가 궁금하거든

자동차에서 내려 물끄러미 바라봐라

강이 아니라 몸뚱어리다

흐르는 살결이다

지지리 못생긴 뚱뚱한 허벅지다

설산이 녹인 오누이다

그 오누이는 뛰노는 투명한 화폭이다

강변의 포플라나무를 결혼식에 온 하객처럼 세워두고

천만 년 묵은 신랑 신부처럼 흘러간다고

신랑 신부 입장만 천만 년 째라고

부둥켜안고 누운 두 몸뚱어리가

산을 옆구리에 끼고 가고 또 간다

흘러가버렸네 하고 돌아서다가

그래도 다시 또 한 번 돌아서 보면

가기는 가는데 떠나지는 못하는 강이다

푸른 하늘이 흐르는 살결 위에

푸른 제 몸을 덮어 주려고 기울어져 있다

강물 위 망루 한켠에

여기서 세수하지 마라

눈썹 지워진다

얼굴 사라진다

물을 찍어 얼굴에 바르면 손목마저 사라진다

나는 경고판을 세운다

당신이 나인지 내가 당신인지

이제 우리는 땅에 매여있지 않은 사람들

우리는 떠나지만 가지는 못하죠

벗어놓은 뼈에 가려운 꽃이 피고

두 손을 잡을 때마다 흐르는 손금

손목으로 기어오르는 붉은 강줄기

가기는 가는데 죽어도 떠나지 못하는 소용돌이에

누가 포클레인을 들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