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카사블랑카 / 정영숙
주선화
2022. 3. 16. 17:11
카사블랑카
ㅡ정영숙
카사블랑카 여름 옥상에서 나누던 나의 키스를
누가 훔쳐갔을까요
안전장치도 없던 카사블랑카의 어둔 골목길
지뢰가 묻힌 줄도 모르고 팔짱 끼고 활보하던 시절
우리의 곧은 등 뒤에는 대낮에도 석류알처럼 붉게 쏟아지던
별무리, 든든한 백이 있었지요
한 호흡 한 호흡마다 부딪치던 입술이
누군가 던진 수류탄에 맞아 사하라 사막을 뒹굴어도
하얀 모래 위에 누워 천연히 바라보던 은하수는
우리의 안전한 보금자리, 하얀 집이었으니
두려울 게 없었지요
내일의 사구(沙丘) 방향도 모르면서
지구 반대편으로 눈 감은 채 걸어갔던가요
해와 모래가 맞닿던 불꽃의 사하라
사막이 강이 되고 강이 사막이 되는 몇 겹, 긴긴 눈물과
모래바람으로 품을 더 넓힌 사하라에는
꿈같은 여름밤이 깃발을 달고 은하수를 건너가고 있네요
그 깃발 따라
별빛 쏟아지는 하얀 집
카사블랑카에 다시 도착하는 날
우리는 또 다시 지난날을, 새날을 살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