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나무랄 데 없는 / 김효연

주선화 2022. 3. 28. 10:10

나무랄 데 없는

 

ㅡ김효연

 

 

사계절은 꽃다발입니까

돌림으로 나무랄 데 없을까요

봄여름가을겨울은 둥글게 허리를 껴안고 잘 묶여있습니다

사는 생각만큼 깁니다

사는 게 긴 것처럼

점점 길어진다면 뱃살, 혓바닥도 묶어주세요

머리를 총총 땋은 봄은 언제나 혼자입니다

계절이 수천 바퀴 돌아도

천지사방에 다발다발 꽃을 부려놓고

홀로 뭘 바라보겠다는 것인지요

위태롭진 않더라도 베개 한 개는 독방이잖아요

어쨌거나 짝은 두 개가 이성적이 될 것입니다

마트에서 1+1 상품을 덥석 잡게 되는 건

배고픈 장바구닌지

열 개도 모자라서 외로운 손가락인지

한 개를 더 보태는 건 마케팅이 아니라

어느 외톨이가 매운 라면이든 부드러운 치솔이든

절대 혼자 두지 않겠다는 맹세입니다

봄보다 봄봄

쌍보다 쌍쌍

노부부가 넘어질세라 팔짱을 끼고 걸어갑니다

두 손은 엉덩이를 싸안고 두 팔은 목을 껴안은

청춘 뒤에 꼬리 두 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늘도 계산대 위에는 묶음이 수북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