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꽃 피네, 꽃이 피네 / 신철규
주선화
2022. 4. 1. 10:38
꽃 피네, 꽃이 피네
ㅡ신철규
구야, 참꽃이 코피 쏟아놓은 것맹키로 우째 저리 타오를꼬, 앞산 날망에도 뒷산 골짝에도 천지 삐까린기라, 한 웅큼 따다 입안에 넣으면 헛헛한 속이 달래질라나
참꽃은 참말로 희한케도 길가에도 안 피고 깊은 산에도 안 피는 기라, 길가도 아니고 깊은 산도 아닌 똑 어중간한 자리에 피는 기라, 부끄럼도 많고 외롬도 많이 타서 그렇것제
우짜믄 그런 자리가 얼라들을 묻은 데라서 그런지도 모르제, 너그 작은 할아부지도 덕석에 말아 지게에 지고 가 묻은 동상도 서이나 된다 카이 오죽하것노
구야, 전장중에 이 산골짝에도 빨치산들이 무시로 내려와서 동네 사람들을 해꼬지 안 했나, 밤마다 내려와서 밥해달라 캐싸서 한여름에 변소간도 못 가고 요강에다 볼일을 안 봤나, 지린내가 등청을 해도 할 수 없었제
옆 동네에는 사람도 하나 안 끌리갔나, 회관 앞에 모아놓고 손이 젤 하얀 사람이라꼬 잡아갔다카더라, 앞산 날망까지 끌고 가서 총을 놨다 안 카나, 참말로 저 꽃들이 다 피인 기라
빼재 골짝에는 빨갱이 잡으러 온 순사들이 지나가다가
말캉 총 맞고 죽었제, 온 또랑에 피칠갑을 해서 물도 못 묵었는 기라, 내사 그때부터 노을에 물든 또랑만 봐도 오금이 저리서 날 어두워져셔야 물을 건너고
구야, 니는 대처로 나가 살아야 한대이, 가서는 총도 잡지 말고 참꽃맬로 또랑또랑 살거라이, 나서지도 숨지도 말고, 눈을 부릅뜨지도 감지도 말고, 꽃이 피인 기라, 피가 꽃인 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