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만두 / 박은영
주선화
2022. 4. 12. 09:57
만두
ㅡ박은영
우리의 피는 얇아서
가죽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웠다
비칠까 봐 커튼을 치고 살아도 속내를 들켰다
틈은 많은데
쉼 틈이 없다는 것은 조물주의 장난
우리는 섞이지 않는 체질이지만
좁아터진 방에서 꾹꾹 누르며 지냈다
프라이팬과 냄비 손잡이에 덴 날은
입술을 깨물었다
부대끼고 어우러지고 응어리지고
그러다가 터지면 알알이 쏟아지던 찌끼 같은 시비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아직 찢어지지 않은 것
찢어질 듯 불안을 안고 사는 일이었다
처녀가 아이를 배도 이상하지 않은
무덤 같은 방,
깊이 쑤셔 넣은 꿈속에서
개털과 나무젓가락과 실반지가 나왔다
온도를 잃은 이물질들
방으로 들어오는 건
사람이 아니라
짙게 밴 냄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의 피는 얇아서
가죽, 아니
가족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