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검은 레깅스 / 임헤라
주선화
2022. 4. 28. 10:25
검은 레깅스
ㅡ임헤라
당신은 레깅스를 계속 입고 있습니다
겨울 가로수들도 짚으로 짠 레깅스를 계속 입고 있습니다
그 앞에 그 뒤에서
해독할 수 없는 눈보라가 흩날립니다
눈보라는 한 그루 은행나무 아래서 다소곳이
흐느낍니다, 때로는 물푸레나무 숲에 머무르고
환호하고 쌓입니다
그 위로 까마귀 떼가 우수수 쓰러집니다
봄은 저만치
멈춰 서서 아픈 맨발을 냇물에 씻고 있습니다
봄은 아직 오지 않는 핑계거리는 많습니다만
당신이 잠에서 멀리 보이지 않을 때
곤두박질치는 강물이 비단처럼 펄럭이는 소리
그러면 봄이 다 왔다는 소리입니다
당신은 겨울에도 레깅스를 계속 입고 있습니다
오늘은 건널목에 마주서서 신호에 따라 우리는 빗겨갔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모두 레깅스를 입고 있습니다
참, 내가 자정마다 지은 달빛은 조각난 눈보라가 됩니다
눈보라는 당신에게 아침을 깨뜨려서 가져갈 것입니다
달력에는 흐르는 것들뿐입니다
흐르다가 멈출 수밖에 없는 것들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