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양떼구름 양산을 쓴 아가씨 / 박세랑

주선화 2022. 5. 12. 09:06

양떼구름 양산을 쓴 아가씨

 

ㅡ박세랑

 

 

너랑은 하기 싫은데요

너랑도 하기 싫은데요

 

껴안을 때마다 심장에 콕콕 박히는 고슴도치는 지겹다

누가 먹다 버린 바나나를 주워 먹기 싫은데

 

유리공처럼 부푼 상상 속에서

종일 자전거를 타고 여름 공원을 맴돌았어요

 

쓰러진 후추나무 숲을 휘저으면서

 

젖은 담요 같은 몸으로 비밀을 덮어두고 싶은데

상상 속 아가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공중그네를 타고 북극을 스무 바퀴쯤 돌고 올까요?

 

머리맡엔 짓무른 망고들이 한 상자

 

피라미 떼 익사한 기억들이 튀어 오르고

 

끊어지는 머리카락과 묵은 감정이 점점 불어나

들고 가던 쇼핑백들이 터져버렸어

 

처음 할 때처럼 나, 아프고 싫고 사랑받고 싶어서

햇빛 쨍한 날이면 양산을 쓰고 마포에서 성선대교를 지나, 팽팽한 대기를 뚫고 멀리멀리 날아올라요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진주알처럼 반짝반짝

 

속옷만 입고 쫓아다니는

 

달아오른 정오의 회전목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