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보라색을 보라 / 이명덕
주선화
2022. 5. 19. 10:28
보라색을 보라
ㅡ이명덕
보라색은 저 깊은 곳에서
서서히 배어 나오는 색이지
어쩌다 세상의 모서리마다 부딪힌
연약함에서 염색되어져 나오는
보라의 며칠이 있지
서서히 사라지거나 풀어지는
보라는 짓이겨진 색깔이지
치맛단으로 쓸고 다닌
벌개미취 꽃들의 가려운 흔적
해진 치맛단을 본 적 있니
다 보라의 색깔이
누더기로 물들어 있었던 것 기억하니
보라는 몇 겹 표정의 밑에서
바깥을 살피는 색이지
쌀쌀한 날씨 쪽에서
기웃기웃 거리며 배어 나오는,
영혼의 색이 있다면 보라 같지 않겠니
품위와 병약함을 보색으로
열정과 희망을 나란히 갖는
가장 가난한 색이기도 하지
가난한 이들의 손과 발에 물드는
보라는 얼굴 밑의 표정
손목에 오래 비명으로 남아 있던
어떤 손의 색깔 같은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