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긴 손가락의 시 / 진은영
주선화
2022. 5. 27. 08:49
긴 손가락의 시
ㅡ진은영
시를 쓰는 건
내 손가락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 내 손가락,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뻗어 나와 있다. 나무를 봐, 몸통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가지처럼, 나는 건드린다, 고요한 밤의 숨결,
흘러가는 물소리를, 불타는 다른 나무의 뜨거움을,
모두 다른 것을 가리킨다. 방향을 틀어 제 몸에
대는 것은 가지가 아니다. 가장 멀리 있는 가지는
가장 여리다. 잘 부러진다. 가지는 물을
빨아들이지도 못하고 나무를 지탱하지도 않는다.
빗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내게서 제일
멀리 나와 있다. 손가락 끝에서 시간의 잎들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