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2022년 열린시학 신인 작품상 / 김 솜

주선화 2022. 7. 2. 11:12

슬라임 (외 3편)

 

ㅡ김 솜

 

 

너는 쉽게 구겨지는 얼굴

입에 짝 달라붙는 라임을 밖으로 꺼낼 줄 아는

즉흥적인 기분이지

 

심심한 창가에서 생각을 늘리는 몇 가지 거짓말

단숨에 뒤집히는 자세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앞뒤 없고

주장 없는 무형식의 괴물이지

 

이렇게 순하고 말랑말랑한 것이 왜 괴물이 되었을까

 

엄청난 가능성과

무한한 형상을 품고 있는 너

갇힌 상상을 꺼내주길 기다렸을까

 

내 마음을 읽고 손가락을 끌어당기지

어쩌면 내 생각을 받아먹고 있을지도 몰라

 

내 뜻대로 움직이는 건 너 하나뿐이야

쿡쿡 옆구리 틀어쥐어도 울지 않고

친구의 뜻대로 움직이는 나를 위로하지

 

괴로움이 내 등 뒤에서 은밀하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 귀에 걸리는 동안

소심한 나는 반격을 못해 너를 끌어들였지

불안과 증오를 주물렀지

 

슬픔이 슬금슬금 밀려나고 집착하다

말려들었지

나를 갖고 논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중독이 된 후였어

 

일기장에 적힌 이름들

기형으로 변한 얼굴들

결국 너는 나의 괴물이었어

 

 

 

지인의 지인

 

 

그녀가 말하는 그를

나는 아는 걸까 모르는 걸까

 

나는 듣는다

그녀의 입에 걸린 그 남자,

오늘도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모르면 더 좋았을 모르고 싶은 이야기

사랑 없이 사랑하는 기분으로

이목구비가 사라진 유령처럼 듣는다

 

남자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내게로 왔다

반전의 페이지를 숨기고,

 

그녀의 말속에서 그는 자주 굴러 떨어진다

솔기 터진 비밀처럼

불협과 불화를 늘어놓는 구조 속에서

그녀의 남자와 내가 아는 그가 자주 겹친다

 

나는 다 읽은 책처럼 남자를 알면서도

모른 체를 할까

 

나는 어느새 그 남자의 숨겨진 애인이 되어

우거지탕 속 선지처럼 끓는다

너무 잘 그려지는 파국은

옆에 있어도 멀다

 

변질된 시간을 감당하며

각자 다른 미래를 같이 간다

 

그녀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가는 건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았다는 신호다

잃을 것인지 이룬 것인지

사랑의 일이란

좀처럼 끝날 줄을 모르고

속편이 전개될 모양이다

 

그녀가 말하는 그를 나는 끝내 모르는 걸까 아는 걸까

 

 

 

별일 시냅스

 

 

통로에 누워 봤어요?

달리는 꽉 찬 버스

순간 정신을 놓쳤어요

마음들이 바닥에 쏟아졌겠죠

 

이별하거나 장례식장엔 다녀오지도 않았어요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없어서 술에 기댔죠

술이 발효된 기분을 살감했어요

 

죽어보고 싶었니?

바닥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 울음이 생겼어요

바닥인지 먼저 알아봤어요

 

좋은 사람을 계속 좋아하기 쉬울 것 같죠?

 

손에 놓친 유리컵은 바닥을 만나 주저 없이 깨지는데

우리는 우리를 품지 못합니다

 

창문에 어린 얼굴을 빗줄기가 쓸어줘요

일침을 가하 듯 번개가 반짝, 

잠깐 피었다 진 꽃 같은 순간입니다

두서없는 일이 두 시간 전의 통보를 붙잡아요

 

별일 아니라는 듯 무관심한 관심이 필요해요

마침내 어떤 순간이 발생했을 뿐입니다

바닥 밑에는 밑바닥

밑바닥 더 밑에는 무엇이 있나요

 

먹구름도 구름의 일족이죠

 

 

 

Ctrl+c, Ctrl+v

 

 

평범하다

눈물이 희박한 상태로

하루가, 일 년이 어쩌면 평생이 평범함에 매몰될 것 같다

지루하다

웃을 일이 별로인 상태로

나와 상관없는 불협화음이 주는 불편은 밥 한 끼 더 먹는 일처럼 무의미하다

승패는 링 위에 있고 나는 박수나 쳐주는 구경꾼

뉴스를 듣는다

뉴스가 전하는 행운이나 극단의 참사는 그저 관객 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식탁 앞에 앉아 무력과 무감을 씹는다

뇌에 구름이 잔뜩 끼어 굼뜬 몸

무명씨로 무명씨 아닌 사람들을 따라 하다 잃어버린 건 나,

보잘것없음을 뒤집으면 무엇이 쏟아질까

저기까지 가면 뭐가 있을까

별일을 기대하며 별별 생각을 섬기다가

고故 아무개가 되기 전에 뭔가가

되고 싶다

될래

될까

되게 하자

될 것 같다

되어간다

되어가는 중인가

될 거라 믿자

되도록 하자

될 수 있을까

되는 방향으로 가자

되려는 태도가 불안이다

되돌리기엔 멀리 왔다

될 때를 기다리자

될 때까지 기를 쓰자

되도록 해를 보자

되자 앞에서

한 발

한 발

되다는 그런데 어디에 있을까

여전히 질문만 되풀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