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눈표범의 꼬리(외 3편) / 안현심

주선화 2022. 8. 2. 08:51

눈표범의 꼬리(외 3편)

 

-안현심

 

저기에 한번 휘둘리면 벼랑으로 날아가 납작하게 부서져버릴 테지만

 

그래도

휘감기고 싶다, 내동댕이쳐지고 싶다, 굵은 꼬리에 매달려 설산을 오르내리고 싶다

 

송곳니보다 발톱보다

 

매혹적인

꼬리에

나는 걸고 싶다

 

 

 

아파트 설산

 

 

도솔산 봉우리에서 건너다보면 

나뭇가지 틈새로 아른거리는 콘크리트 설산산맥

만년설 뒤집어쓴 빙벽 동굴에는

영하 50도에도 얼지 않는 사람들이 사네

눈뜨면 사냥터로 우르르 나갔다가

해질녁이면 동굴로 기어 들어와 속옷만 입은 채

노래하고 술 마시고 책을 읽는다는

21세기의 눈사람

 

붕락하지 않는 빙벽,

그들의 빙벽은 

튼튼하네

 

 

안나푸르나

 

 

금강석처럼 빛나는 얼굴,

 

사랑의 화살은 단번에 심장을 관통하고 말았네

내 순수는 그대와 하나 되길 망설이지 않았네

 

군중 앞이거나

저잣거리를 떠돌 때도 오직 그대뿐

방랑벽은 돌올한 지성 앞에 무릎 꿇고 말았네

 

내면 깊은 호수에서

환희를 길어 올리는 안나푸르나여

 

그대를 만나지 못한 나날

들개처럼 떠돌았네, 바람둥이였네

 

 

 

삐딱하게 보기

 

 

지구가 23.5도 기울어

바람이 불고 사계절이 있듯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네 발꿈치 보인다

바로 보았을 때 둥그렇던 얼굴이

올려다보면 파르르한 코스모스

고요한 뜨락에 엎드린 바람자락 보이고

참나무 껍질 속 사슴벌레가 보인다

 

삐딱하게 보기,

기울어져 보는 것은

어제 같은 오늘이 아니라

전혀 다른 내일을 생성하는 것

 

황무지에

배롱나무 한 그루

키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