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바다 우체국 / 이병철

주선화 2022. 8. 5. 10:44

바다 우체국

 

-이병철

 

 

남태평양의 섬나라 비누아투엔

바닷속 우체국이 있다

말미잘 편지지에 쓰인 물고기들의 사연이

대륙붕과 산호마을을 넘어

바다의 우체국까지 오는 것이다

 

멀리 타이티로 보내는 엽서들

물결에 글자들이 달아날까

햇살에 말린 코코넷 우편함에 담긴다

사람이 사람에게, 물고기가 물고기에게

얼마나 많은 안부들이 우체국을 거쳤을까

태양도 제 몸에 사연을 담아 우체국으로 보낸다

집배원들은 그 빛살을 심해로 배달한다

 

우리 사이 바다에도

미처 전송 못 해 쌓아 둔 편지들

네 미소 천 갤런이 담긴 예쁜 답장

저녁놀 반사하는 파도에 실려 와

작은 글씨 새기겠지, 우체국이 있다면

그때, 핏물로 쓴 편지들을 빠른 우편으로 보낼까

 

물살의 집배원이 내 문을 두드린다

그가 내게 건넨 것은 파도, 수취인 불명

젖은 봉투 위에서 제 집을 무너뜨린 글자들을 본다

주소가 지워진 낯선 저녁

핏방울 맺혀 있는 노을 속에

나는 우체국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