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끈 / 이린아
주선화
2022. 8. 30. 09:53
끈
-이린아
나는 빨간, 아니 새빨간, 아니 시뻘건 과일을 좋아했어요 젊음을 유지시켜준다는 것들은 모조리 빨강이었잖아요! 속이 하얗더라도 빨간 사과를 사고 겉이 푸르더라도 수박을 쪼개고 물러 터지더라도 토마토를 굽고 텅텅 비우더라도 파프리카를 썰었죠
내가 태어나서 처음 입은 원피스는
빨간색이었으니까요 빨간색이야말로 가장 예쁜 색이란다ㅡ 엄마, 빨간 색도 예쁜 색도 내가 모르는 색인 걸요
나에게 가장 어려운 말은 예쁘다는 말이었죠 나는 도무지 그 말이 무슨 느낌인지, 내가 그 말을 들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나는 그 말을 언제 남자에게서 들어야만 하는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어쨋든 그건 어릴 적부터 내 팔목에 묶어둔 팔찌처럼 소원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누가 끊어간 거죠
정말 고된 일이에요 내 몸을 칭칭 감는 거요 말똥말똥 눈을 뜨면서 빨간 과일을 사러 가야 할 것 같을 땐ㅡ 엄마, 빨간 과일도 예쁜 과일도 내가 모르는 맛인걸요
긴 머리를 끈처럼 흔들던 아이가 바닥을 잡아당기고 있다면 그건 온몸이 빨개진 사람을 보고 아무도 빨개지지 않는 오후와 같겠죠 빨개진 몸을 감싸는 일이 그들에게는 고된 것보다 슬퍼하지 않는 것에 가깝잖아요?
빨갛게 빨갛게 동그랗게 동그랗게
엄마,
감아줄래요? 내가 이곳으로 돌아 나올 때까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