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마리우풀 / 고성만

주선화 2022. 9. 30. 09:56

마리우풀

 

-고성만

 

 

전쟁이 일어난 시간에

약간 마음의 근육을 씰룩거렸지만

전쟁이 일어난 시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청 앞 광장에서 약속을 하고

전쟁이 일어난 시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금은 절망하면서

조금은 허무해지면서

 

포위망 좁혀가는 도시,

영화처럼 펼쳐지는 전쟁을 시청한다

 

마리우폴*을 사랑한 청년이 

짧은 포옹 후 총 들고 달려가는 장면

청년의 뒤에 대고 부디 무사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처녀

결사적으로 저항하던 시민들이 다치거나 죽고

모든 빛 끊어진 채

폐허가 된 도시

 

누가 원한 것이었을까 도대체

누굴 위한 것이었을까

사랑했던 날들이여

무작정 신께 매달리지만 제발,

기회를 달라 애원하지만

찰나에 스쳐가는 입술자국 같은 희망마저 사라지면

도대체 어디로 떠나야 하나

 

마리우폴,

가만히 눈 감고 너 부를 때

가슴 아래쪽 명치에 찌르르르

툭, 떨어지는 눈물

 

 

*우크라이나의 지명, '성모마리아의 도시'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