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꽃사태 / 이경교

주선화 2022. 10. 10. 09:04

꽃사태

 

-이경교

 

 

지상의 모든 무게들이 수평을 잃기 전, 다만

햇빛이 한번 반짝하고 빛났다

 

저 꽃들은 스스로 제 안의 빛을 견디지 못하여

그 광도光度를 밖으로 떼밀어 내려는 것

야금야금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스스로 빛의 적층을 이루던,

빛도 쌓이면 스스로 퇴화한다는 걸 알고 있는지

도대체 누가 그 붉은 암호를 해독했을까

이웃한 잔가지 한번 몸을 떨 때마다

일제히 안쪽의 문을 두드려 보며

더운 열꽃처럼 스스로 제 체온을 덜어내려는

꽃들의 이마 위엔 얼음주머니가 얹혀있다

 

체온의 눈금이 떨어질 때마다 연분홍 살 속에 꽂혀 있던

눈빛들은 다시 컴컴한 안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몸을 흔들어 수평을 허무는 꽃들이

어두운 고요 속에 일제히 틀어박힐 때

 

문을 닫기 전, 다만

햇빛이 한번 반짝하고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