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기형도 생각 / 하두자
주선화
2022. 11. 25. 10:47
기형도 생각
-하두자
우리가 아닌 내가 당신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간직한 시집을 제대로 읽지 못해 미안해집니다
나는 이제 당신을 읽을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온갖 잡소리로 들끓는 밤이
침대에 의자에 책상에 널브러진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밤을 지새고 나면 창밖에는 또 새벽이 있습니다
저 휘뿜한 너머의 먼 곳이
나를 탈출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지요
당신을 닮아 보려고 노트북을 펼칩니다
여전히 버벅대는 잠꼬대를 늘어놓으며
마우스를 놓치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간 물타기를 합니다
이직도 그곳은 축축한 어둠 속 홀로인가요
당신의 시집이 태어난 날짜에
나의 문장은 꽃이 되었습니다
슬픔의 꽃
우울의 꽃
결핍의 꽃
예전의 빨강 볼펜으로 적어둔 사무친 감상과
검은 볼펜으로 밑줄그은 자리마다
꽃의 유언이 후드득 떨어져 있습니다
요절에서 뛰쳐나온 당신의 검고 붉은 노래를 껴안고 떠돕니다
나는 입 속의 검은 잎*을 사랑이라고 바꾸어 부릅니다
*기형도 시집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