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현관과 센서등 / 이선희

주선화 2022. 12. 6. 10:41

현관과 센서등

 

-이선희

 

 

반경 안에서 움직이는 것들에만 반응하는 습성이 있다

반경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에 의해서만 밝아진다

 

더러는 헛것으로  밝아지기도 하고

가끔은 착각으로 밝아지기도 한다

 

반경 안에 들어와 팔을 휘젓는 물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필요 없이 반응하거나 너무 늦은 반응으로 자주 의심을 산다

 

혼자 켜지고 커진다

울다가 웃는다 혼자

 

좀처럼 반경 안으로 들어서려 하지 않는 물체를 기다린다

오래전부터 준비 완료 상태로 어둠 속에서 늙고 있다

 

 

 

환생하는 꿈

 

 

저승에는 문이 두 개 있었다

일반으로 들어가는 문과 시인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죽어서도 시인인 것을 기뻐하며 시인의 문으로 들어갔다

문 안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유해 보이는 세상이 있었다

사람들은 천천히 산책하고 먼 곳을 보고 있었고

움직임도, 이야기도 조용조용했다

더러는 익숙한 모습의 사람들도 보였다

기형도 시인이 잠시 바라보았는데 인사를 못했다

서정주 시인도 저쪽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천상병 시인도 웃는 모습을 보였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윤동주 시인이 다가왔다

주변을 둘러보며 여기는 시인들의 세상이라고 했다

전생에서 쓴 시가 이곳에서는 재산이라고 했다

꿈인지 몽상인지 문득 깨어나니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다

아직 나는 이 세상에 있었다

써 놓은 시가 부족해서 되돌아온 것만 같았다

이 생에서 슬프고 외롭게 시를 쓰는 일이 복을 쌓는 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