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이슬로 손을 씻는 이 저녁에 / 이기철

주선화 2022. 12. 27. 13:59

이슬로 손을 씻는 이 저녁에

 

-이기철

 

 

어디엔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움 돋고 있을 것 같아

소낙비 트리트먼트로 머리 감은 나무 아래서 

나도 비눗물을 풀어 세수를 한다

지우산을 펴는 것은 하늘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에게 부끄럼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꽃씨 하나를 아기처럼 보듬는 저녁이

한 해를 반짇고리처럼 요약하는 날은

내 틀린 생각들을 불러내어 자주 회초리를 친다

수많은 책과 금언들을 지나왔지만

아무도 아름답게 세상 건너는 걸음걸이를

가르쳐준 사람 없다

위태로이 담을 건너먼서도 하얗게 웃는

박꽃같이 사는 법을 말해준 사람 없다

내 무신론의 아름다움이여

길을 가다가 우물물이 흐려질까

나뭇잎을 건져내는 사람 만나면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이 시대를 건너갈 것이다

이슬로 손을 씻는 이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