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3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주선화
2023. 1. 5. 09:28
책을 끓이다
-장현숙
책은 날마다 맛이 다르다
초록 표지의 책에선 식물의 맛이 나고 지구에 관한
책에선 보글보글 빗방울 소리가 나고 어류에 관한
책에선 몇천 년 이어온 강물 소리가 난다
곤충에 관한 책에선 더듬이 맛이 나, 이내 물리지만
남쪽 책장은 마치 텃밭 같아서 수시로 펼쳐볼 때마
다 넝쿨이 새어 나온다 오래된 책일수록 온갖 눈빛의
물때와 검정이 반들반들 묻어있다 두꺼운 책을 엄지
로 훑으면 압력밭솥 추가 팔랑팔랑 돌아간다
침실 옆 책꽂이 세 번째 칸에는 읽고 또 읽어도 설레
는 연애가 꽂혀 있다 쉼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누군가
와 겹쳐진다 그러면 따옴표가 보이는 감정을 챙겨 비
스듬히 행간을 열어놓는다
새벽까지 읽던 책은 바짝 졸아서 타는 냄새가 났다
책 속에 접힌 페이지가 있다는 건 그 자리에서 눈의
불을 켜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일기장이 제일 뜨겁
다 그 안에는 태양이 졸아들고 별이 달그락거리면서
끓기 때문이다
책을 끓여 식힌 감상을 하룻밤 담가 놓았다가
여운이 우러나면 고운 체로 걸러내야 한다
그 한술 떠 삼키면
마음의 시장기가 사라진다
*나의 감상
시인의 상상력이 무섭다
많이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