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선화 2023. 2. 16. 11:58

cccp

 

-임재정

 

 

                                                         ㅡ후일담은 오늘이 가장 빛난다*

 

  봄의 한 점을 구겨 등 뒤로 밀쳐 두면

 

  패잔한 겨울이 기어들지

 

  주름을 덫 놓고 아이에게 손짓하는 노년

 

  골조를 세우다 부도를 맞은 교외의

 

  콘크리트 건물 불끈 주먹을 쥐고 ㅡ 유치권 행사 ㅡ 이마에

질끈 플래카드를 동인 채

 

  수십 년째 덤불 속으로 쫓기고 있다

 

  진입로 없는 공중에 낫과 망치가 펄럭이며 녹슬어 간다

 

  여기서 외면하는 저 너머라는 미필적 고의

 

  뜯긴 벽지 속 신문에 실린 메머드 화석처럼

 

  반세기 가까이 동토층이 녹고 있다는 소식

 

  무덤도 없이, 다시 죽을 수도 없는

 

  삼촌이

 

  끊임없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다 간다

 

 

  *볼셰비키들이 썼다가 지운 강령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