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깊어지는 사과 / 서안나

주선화 2023. 3. 3. 17:06

깊어지는 사과

 

-서안나

 

 

사과가 익는 저녁은 수상하다

 

익는다는 말은

사과의 의지

사과나무를 떠나겠다는 

사과의 표정

 

사과를 깎으면

나무의 첫 마음 소리가 난다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를 듣는 오후

떠나는 것들은 왜 모두 손목이 젖어 있을까

남근을 자르고

신의 목소리로 노래한 자는

육체를 버리고 영혼으로 돌아갔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면

나무를 버린 꽃의 손목이 있다

두 귀에 푸른 뱀을 걸고

안녕

머리카락을 뽑고 캄캄해진다

 

잘 익은 사과를 먹으면

첫 생각을 지키는 사람이 된다

 

나는 뱀을 삼키고 태어났으므로

어머니를 삼키고 태어났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