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목련 그늘 / 성윤석

주선화 2023. 3. 29. 11:42

목련 그늘

 

-성윤석

 

 

잠이 없는 자리에 별이 생긴다

목련나무 아래를 지나면

목련나무 아래를 지나는 그늘을 본다

옆집 무화과나무에 그늘이 생겨

장마가 피려다 마는 것을

바라보면, 피려다 마는 장미의 그늘을 본다

노란집 담장에 더 환한 노랑을

칠하면 더한 노랑의 그늘

당신을 생각하면 당신을 생각하는 그늘

당신을 그만두면 당신을 그만두는 그늘

거리에 불빛 들어온다

목련은 그때 목이 떨어지고

옆집 노파는 리어카에 버려진 세탁기를 싣고 오고 있다

끝없는 그늘들에게

노파는 가끔 포옹을 한다

노파를 지키는 신은 있을까

나는 내게 물었고

아흔여덟 명이라고

내가 내게 대답했고

아흔아홉 명은 왜 되지 않겠느냐고 다시 되물었다

목련 아래에 오래 서 있으면

목련 아래에 오래 서 있는 그늘

나는 내 그림자에 바싹 붙은 내 그림자를 본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