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여름 가고 여름 / 채인숙

주선화 2023. 7. 1. 10:05

여름 가고 여름

 

-채인숙

 

 

시체꽃이 피었다는 소식은 북쪽 섬에서 온다

 

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를 피우며

가장 화려한 생의 한때를 피워 내는

꽃의 운명을 생각한다

 

어제는 이웃집 마당에서 어른 키만한 도마뱀이 발견되었다

근처 라구난 동물원에서 탈출했을 거라고

동네 수의사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밀림을 헤쳐 만든 도시에는

식은 국수 면발 같은 빗줄기가 끈적하게 덮쳤다

 

밤에는 커다란 시체꽃이 입을 벌리고

도마뱀의 머리통을 천천히 집어삼키는 꿈을 꾸었다

 

사람들은 어떤 죽음을 목도한 후에 비로소 어른이 되지만

삶이 아무런 감동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에

번번이 놀란다

 

납작하게 익어 가는 열매를 따먹으며

우리는 이 도시에서 늙어 가겠지만

 

꽃은 제 심장을 어디에 감추어 두고 지려나

 

여름 가고 여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