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일요일에도 자라는 나무 / 김광규
주선화
2023. 7. 11. 09:35
일요일에도 자라는 나무
김광규
후박나무 밑으로 굴러온 감 한 개
저절로 땅속에 묻혀 싹 트고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커지면서
담벼락보다 높게 자랐고 올해는
주황빛 열매 주렁주렁 매달렸다
온종일 살펴보아도 어느 틈에
줄기 굵어지고 잎 돋아나고
꽃 피고 열매 맺는지
자라나는 짧은 순간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추녀 끝보다 웃자란 후박나무가
아래서 올라오는 어린 감나무에게
슬며시 하늘 한 모퉁이 비켜주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
쟁반보다 넓은 후박나무 잎에
접시보다 좁은 감나무 잎에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들 서로
어울려 빗소리 화음 내면서
귓가에 울려올 때까지
나무들의 아름다운 목금 소리
미처 듣지 못했다
비록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듯해도
어느새 10년 동안
사계절 밤낮 가리지 않고
주말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무성하게 자라나
일요일 아침마다 창밖에서 수런거리며
잠든 마음 흔들어 일깨워주는
우람한 갈잎 나무
풍성하고 믿음직한 그 모습
언제나 변함없이 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