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누가 있어만 싶은 묘지墓地엔 아무도 없고 / 이병국
주선화
2023. 8. 9. 11:47
누가 있어만 싶은 묘지墓地엔 아무도 없고*
-이병국
복자기 단풍 밑에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
시집을 읽었다
당신이 그어 놓은 밑줄을 아무리 따라 읽어도
의미를 알아내지 못했던 건
제 몫의 바닥이 단단하여 우리를 틔울 수 없었기 때문
함께했던 날들 만큼
밀려난 마음이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오래된 당신을
책갈피에 끼워 넣는다
바꿀 수 없는 저편과
나란히 겨울밤이 깊어
책은 자꾸만 덮이고
바싹 마른 단풍잎으로 내가 있다
* 윤동주의 「달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