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니트 / 신아인

주선화 2023. 9. 15. 08:44

니트

 

-신아인

 

 

몰랐어 직물이 이렇게 많은 가로와 세로가 있는지

직물에 코를 박고

직물 냄새를 알게 되고

그 냄새에 익숙해져

냄새가 무엇인지 잊어버릴 만큼 가까이에서야

가로와 세로를 볼 수 있었던 거야

 

사이좋은 선이구나

규칙적인 선이구나

우리는 평일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어

버스에서 지하철 다시 버스

나만 알지만 대단하지 않은 경로로 집 주소를 찾아가는 것처럼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지

그런 아이들이 골목마다 쏟아졌다가 사라지는 나라가 있어

재작년 여름 그곳에서 넘어진 아이의 팔꿈치에 연고를 발라주었는데

 

아이를 따라간 회벽 헛간에서

약간의 난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네

까진 벽 옆에는 또 까진 벽

닭들이 번갈아 울고

횃대는 한 방향으로만 가로지르고

그런 일들이 나쁘진 않았어

 

폭발

이후

얼굴을 묻고 울 수 있는 물질이 필요했지만

무엇이 남을 수 있었겠어

알몸을 가리는 나뭇잎에도 구멍이 생겼지 않아

 

남겨진 일들은 바쁘게 뛰어가

출발선에서 만나

엄마와 아빠

젓가락과 물컵

줄넘기의 손잡이가 되어

손을 잡고 각각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길어지는 팔로

팔 없는 모든 일을 안아 주면서

 

엮이는 거야

우리는 함께 안겼고

서로 안아 주다가

함께 안아 주려 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뿌듯한 결절들

 

주고 받은 손가락

선크림의 입자

꼭 다문 입술 모양

우체국 소인들

먼지

세균

공기로 전염되는 웃음과 울음

소금도 설탕도 아닌 맛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천을

언젠가는

이라고 부를 거야

언젠가는 은 아주 크니까 이 헛간의 바닥과 벽을 전부 가리고도 남아서

누워 있는 우리를 목 밑까지 덮어 줄 수 있어

 

동물이든 유령이든 무섭지 않겠지

나는 이불 밑에서 아이의 눈을 보며

약속해

 

이건 꿈이 아니고

이상하게도

어떤 날 너는 신기한 양탄자를 타게 된 거야

휴일에

버스도 전철도 통하지 않는 전쟁통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리고

약간의 나는 이곳에 남아 집을 짜기 시작했어

이글루 모양의 천 이불

여기 보이는 구멍은 사실 약간의 나 때문이겠지만

언젠가는

구멍 나지 않은 집을 완성해 보일게

원자구름 또는 세계의 절반과

닮은 형태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