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어금니를 뺀 날의 저녁 / 김성규
주선화
2023. 10. 30. 11:51
어금니를 뺀 날의 저녁
-김성규
이를 빼고 난 후 혓바닥으로 잇몸을 쓸어 본다
말랑말랑하다 물고 있던 거즈를 뱉을 때 피 냄새
살고 죽는 것이 이런 것들로 이루어졌구나
내 삶이 가진 말랑함
어린 강아지를 만지듯 잇몸에 손가락을 대 본다
한 번도 알지 못하는 감각
살면서 느껴 본 적 없는 일들이 일어나서 살 만한 것인가
이빨로 물어뜯는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말한다
이를 잘 숨기고 필요할 때 끈질기게 물어 뜯으라고
이렇게 부드러운 말 속에
피의 비린 맛이 숨어 있다니
그러니 그들은 늘 자신의 것을 놓치지 않는다
이제는 살고도 죽고도 싶지 않은 나이
오늘도 나는 시장에 간다 뺀 이를 다시 사고 싶어
그러나 내 잇몸에 맞는 것은 없고
구름이 핏빛 솜뭉치로 보인다, 라는 구절을 생각해 본다
울고 있는 갓난아이와 유모차를 밀며
늙어 죽어가는 노인의 얼굴이 겹쳐진다
먹고 살고 있지만, 또 먹을 것이 있을지 불안 속에서 죽어가야 하다니
시를 쓰던 시간은 지나고
살아 있는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밤이다
잇몸으로 고기를 핥으며
오직 뒹굴고 더럽혀져 구걸해야 할 시간이 남았음을 알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