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엄마의 지붕 / 이린아

주선화 2023. 11. 2. 12:03

엄마의 지붕

 

-이린아

 

 

엄마는 죽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꼭 하늘을 쳐다봤어요

 

대답할 것이 너무 많아

막막한 지붕들은 무거워요

 

구멍 난 지붕을 막기 위해 기와공 아저씨가 찾아왔어요

아저씨의 턱수염은 지붕 밑을 받치느라 늘 꼬불꼬불하지요

 

아저씨가 다녀간 날이면

엄마에게도 꼬불꼬불한 털이 있어요

엄마는 올 여름엔 비가 많이 내릴 거라며

뒤뜰에 모아둔 조각 몇 개를 가리켰지요

기와를 받아든 아저씨는 내게

좋은 날씨에 태어났다고 말해주었지만

그건 지붕 속으로 들어가 버린 엄마의 날씨일까요?

 

조각마다 날짜를 적어 두었어요

바람이 불어 치마를 입었거나

날이 맑아 엄마가 말을 걸지 않았던 날짜들 말이에요

 

더 이상 날짜를 새길 조각들이 없을 땐

잔디는 꽃 밑에 숨고 내 발자국들은 잔디 밑에 숨어요

 

뼈대만 남은 나무들은 

문도 벽도 없이 지붕을 만들기 시작한 걸까요?

 

아저씨는 우리 마을에 있는 모든 지붕에 올라가 본

유일한 사람이지요

지붕을 만든 아저씨는 엄마보다 물어볼게 많아졌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