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이별 메뉴 / 도복희
주선화
2023. 12. 4. 08:44
이별 메뉴
-도복희
쇼팽 환상곡으로 부탁해요
선율에 기대어 탈출을 시도해 보려고요
노르웨이 자작나무 숲의 통나무집
새벽이 무지갯빛으로 물드는 곳에서
누구도 마주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
움푹 파인 초승달에 걸터앉아
낮달이 될 때까지
밤의 벼랑을
뜬눈으로 보내야 할 테지만
상관없어요
당신이라는 감옥에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발자국 사라진 사막을 걷는 일이 대수겠어요
한때 인연이라 믿었던 사람이
숨통을 조이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
기대는 죄가 되죠
모든 당신은 환영이었습니다
맨발의 도망자 되어 자작나무 숲길을 달려가요
쇼팽 곡으로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