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타투이스트 / 휘민
주선화
2023. 12. 21. 10:27
타투이스트
-휘민
잘린 손가락을 화분에 묻고 물을 준다
지문이 풀려 나간 자리에 물기가 닿으면
저녁은 어떤 기분이 될까
실핏줄을 타고 오르는 푸른 기억들의 맥놀이
소용돌이치는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날개를 파닥이며 젖은 마음들이 날아온다
나는 골똘하게 손끝을 구부려 물음표를 만들어본다
영원히 잠들지 않을 검은 질문들의 잔등을 긁어본다
그러나 살갗이라는말 속에는 얼마나 깊은 우물이 출렁거리고 있는가
눈을 감지 않고서는 당신의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다
내가 먼저 어두워지기 전에는 속내를 감춘 말들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강아지가 화분 받침에 고인 물을
혓바닥으로 핥아댄다
분홍은 감정을 쉽게 들키는 색
첫 생리를 시작한 강아지를 안심시키려
창문 쪽으로 목을 빼고 있는
꽃기린을 욕실로 데려간다
새벽 다섯 시
배앓이를 하던 강아지가 양변기 옆에서 발견된다
침이 흥건한 발바닥이 발갛게 부어올라 있다
나는 화분에 묻어둔 손가락을 꺼낸다
실핏줄 같은 뿌리가 매달려 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짓나 궁금했는지
잘려나간 마디 하나가
불쑥,
닫혀 있는 문 하나를 밀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