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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주선화 2024. 1. 4. 11:19

면접 스터디

 

-강지수

 

 

허리를 반으로 접고 아 소리를 내면

그게 진짜 목소리라고 한다

진짜 목소리로 말하면 신뢰와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러자 방에 있던 열댓 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허리를 숙인 채

아 아 아 소리를 낸다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진짜 목소리가 방안을 채운다

 

이제 그 음역대로 말하는 겁니다

억지로 꾸며낸 목소리가 아닌 진짜 당신의 목소리로요

 

엉거주춤 허리를 편 사람들이 첫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왔고 -----

멋쩍은 미소를 짓고 몇 번 더듬기도 하면서

 

말을 하다가 불쑥 허리를 접고 다시 아 아 거리는 이도 있다

나는 구석에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본다

 

선생님이 손짓한다

이리 와서 진짜 목소리를 찾아보세요

 

쭈뼛거리며 무리의 가장자리에 선다

허리를 숙인다 정강이가 보이고 뒤통수가 시원하다

 

아 아 아

낮지도 높지도 않은 미지근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옆집 아이와 엘리베이트에서 마주쳐 어색하게 안부를 물을 때

보다는 낮고

 

지저분한 소문을 전할 때

보다는 높다

 

언뜻 저 사람과 그 옆 사람의 목소리하고 똑같다

 

우리 셋이 동시에 얘기하면 참 재미있겠죠

진지한 모임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없어서 그저 소리만 낸다

 

아 아

교실은 소리를 머금은 상자가 되고

 

이가 나간 머그잔에 물을 담아 마시다가 바닥에 흘렸다

닦아내려고 허리를 숙인 찰나

물 위로 번지는 그림자가 보였다

 

진짜 같았다

 

고개를 들었다

 

진짜 사람들이 진짜미소를 지으며 진짜 멋진 잔짜옷을 입은 게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 합격할 수 있을 거예요

 

진짜행복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