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문하門下 / 황형철

주선화 2024. 1. 25. 17:05

문하門下

 

-황형철

 

 

손바닥만 한 마당에 남새밭이 생겼다

연필만 잡아 본 손으로 언감생심

고랑이나 멀뚱히 바라보다가

농부는 농사를 짓고 나는 시를 지으니

꼭 다르기만 한 업종은 아니어서

느긋이 여유가 곰틀대는 것이다

샛노란 배춧잎 은은한 단맛을 알아

벌써 헛침이 돌고

이파리가 자라며 잔잔히 허공을 밀면

나만의 작음 물결 찰랑이니까

멀리 바다까지 나가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정작 기대하는 것은 따로 있는데

무슨 셈이 있어서보다는

약 같은 거 칠 뜻도 없이

형편대로 가끔 들여다보면서

민달팽이 배추흰나비 내게는 해로울 게 없는

벌레들이 놀라운 식성을 발휘하여 만든

구멍을 살피는 것이다

진짜 농부가 본다면 끌끌 혀를 차겠지만

어머니라면 두둑에 콩이라도 키워

놀리는 땅 하나 없겠지만

벌레들 문하에 들어서라도

송송 구멍을 내는 기술도 좀 익히고

그것들 한데 모아 싯줄로 엮고 싶은 거야

내 오랜 공부도 실은

세상을 둥글게 숨을 틔워 주려는 것이니까

벌레도 나도 하등 다를 게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