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읽기 쉬운 마음 / 박병란
주선화
2024. 1. 28. 12:10
읽기 쉬운 마음
-박병란
우리는 왜 그토록 화가 나서 각자 문을 닫았나.
말하다 말고 서로를 남겨둔 채 하루 번갈아 한번씩
입을 다물고, 건드리면 걷잡을 수 없이 연약한
내용물이 쏟아져 나왔다. 부목처럼 힘이 다 빠져
언제 휩쓸릴지 모르는 우리, 형편없이 덧댄
쪼가리같이, 저만치 벗어던진 신발 한 짝같이,
함께 살아도 같은 마음인 적 있었나. 어쩌자고
일요일마다 비가 내렸나, 누가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문이 없는 곳에 매단 달력처럼
어디서 노크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았을, 병은 아픈 것이 아니라 서러운
것, 병을 얻고부터 하루도 슬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 너무 멀쩡해도 너무 아파도 우린 제대로
설 수 없을 거야, 하나에서 열까지 세는 동안 방문
앞을 서성이는, 읽기 쉬운 마음이 모여 사는 섬,
물음표와 감탄사를 한 몸에 지닌 까닭에 때때로
그 마음은 자주 들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