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홍옥의 안쪽 / 김지민

주선화 2024. 2. 19. 10:23

홍옥의 안쪽

 

-김지민

 

 

  트럭이 떨어뜨리고 간

  붉은 홍옥 한 알로부터

 

  한 시절이 통째로 굴러오기도 해요.

 

  내 발치에 멈추어 선 홍옥은 붉고 생뚱맞았죠. 이제 막 이젤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홍옥이었어요. 누군가 아침마다 붉게 덧칠한 듯한

홍옥이었어요. 저를 데려가 달라고 말하는 듯한 홍옥이었어요. 그대

로 두면 산산이 부서질 게 분명한

 

  홍옥을 두고 돌아왔어요.

 

  우리가 이제 집마다 하나씩 있는 이상한 친척이 되어 창가를 서성이

죠. 밤마다 털이 부드러운 짐승을 쓰다듬으며 잠이 들고 해가 뜨면 두

고 온 맹세들이 부끄러웠죠. 우리 각자의 둥지 안으로 해마다 쌓이는

노랗고 붉은 낙엽. 그 낙엽을 우려 차를 마셨죠. 떨떠름한 뒷맛을 곱씹

으며 당신은 종종 웃는가요?

 

  두고 온 홍옥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고 있어요.

 

  홍옥은 붉은 배경이 되어 외따로 떨어진 우리의 옆얼굴을 물들여요.

밤이 우리를 놓쳐서 우리는 자꾸만 구르고 매일 아침 낯선 천장 아래

머리를 부여잡으며 깨어났죠. 거울에 붉고 생뚱맞은 얼굴을 비춰보다

가 남몰래 웃기도 해요. 뒤늦게 이해되는 농담의 형식으로 우리는 서

로의 발치로 굴러가고

 

  자꾸만 붉어지는 홍옥이었어요.

  들여다볼수록 윤이 나는 홍옥이었어요.

 

  한때 우리는 기꺼이 베어 물었죠. 턱을 따라 흐르는 과즙을 훔치며 지

나온 밤들이 홍옥 더미처럼 한가득 쌓여 있어요. 우리가 찾던 밤은 여느

밤 속에 고요히 묻혀 있고

 

  산산이 부서진 홍옥을 새들이 쪼아먹고 있어요.

 

  새들은 홍옥의 한 조각을 훔쳐 뿔뿔이 날아가고

  홍옥의 안쪽은 과연 눈부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