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밑 / 이근일
주선화
2024. 2. 26. 09:50
밑
-이근일
나무에 올라 버찌를 따 먹으며
나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궁금했다
내가 왜 다시 아이가 되었는지 이 집은 왜 하나도 변한 게 없는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부엌에서 언제 나왔는지 모를 할머니는
그만 내려와 밥 먹자 소리치시는데
나는 버찌를 씹다 말고
이러다 이 집에 영영 붙들리겠다는 생각에
긴 사다리를 타고 오르고 또 오르고
사다리 끝엔 흐린 날에도 빛을 발하는
어떤 낯선 세계가 이어져 있고
버찌가 먹고 싶어 침이 고였을 때처럼 나는
그 세계에 들고 싶어 한껏 달아오른 것인데
또다시 밥 먹자는
할머니 목소리가 밑에서 들려와
내려다보면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 마당이 후득후득 소릴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