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아메리카에서는 파프리카가 잘 자라니까 / 데이지 김

주선화 2024. 3. 10. 11:25

아메리카에서는 파프리카가 잘 자라니까

 

-Daisy Kim

 

 

할 말이 있어요

어깨가 갯수만큼, 파프리카의 색으로

 

하오의 좁은 창문으로 초록이 홍수처럼 흐르고 있어요

 

빈 집의 무표정이 쓸쓸할까요, 파프리카의 빈속이 배고플까요,

 

도망칠 수 없어 뿌리 속 뿌리로 멈춰 있었어요

 

혼자는 싫어서 쪼그라진 엄마의 얼굴을 심었어요

 

아메리카에서는 더 많은 비타민이 필요하니까,

뿌리는 떠나도 뿌리니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 처럼 빨리 붉어지기로 했어요

 

노랗게 깨문 어제를 긁어모아 무게를 달았는데 고장난 저울이었어요

 

첫인상을 변장하면 비겁일까요, 버려진 당돌함일까요, 깔 껍질도 없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헬로 하면서 어깨를 두드려요

 

깜짝 놀란 몸속의 씨앗들

여섯 개의 어깨가 볼록해지는 소리를 들어요

 

씻으면 거울처럼 반질반질한

 

오늘은 주홍,

 

 

*에니메이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