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그 계단 / 마경덕

주선화 2024. 6. 4. 13:12

그 계단

 

-마경덕

 

 

내 상처의 목록 맨 앞줄에

 

가파르고

비좁고 

어둑한

계단이 있다

 

그 계단 끝에는 한참을 망설이던 전당포가 있었다

 

이것저것 캐묻는 낯선 사내에게

훔쳐 온 물건 꺼내듯

결혼반지를 내민 손이 떨고 있었다

 

보랏빛 사파이어 반지 하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철창 안 주인을 쳐더보았다

 

"만원 쳐줄게요"

 

결혼 패물과 아이 돌반지는 시어머니 몰래 다급한

큰언니 손으로 넘어가고

남편도 모르는 약속 하나는 끝내 내게 돌아오지 못하고

그날 두 번째 비밀이 추가되었다

 

아이 손을 잡고 내려올 때

손등에 떨어진 눈물이 보석처럼 반짝 빛났다

 

청량리 역전 어디쯤,

 

영혼까지 저당잡힌 그 전당포에

춥고 어두운 계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