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몰염치 / 김휼

주선화 2024. 6. 15. 08:55

몰염치

 

-김휼

 

 

잠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비로소 탁란의 계절이 온 것입니다

숲의 둘레엔 불안한 울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집에는 지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흘려들었죠

어느 구름에 비 들지 몰라,

어느 알 속에 뻐꾸기 새끼 있는지 몰라,

둥지를 우긋하게 다녀가는 구름

헐벗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는

집 없이 사는 법을 일찍 터득했습니다

바람 앞에 구름은 왜 머물지를 못하는지

공갈젖꼭지를 물려 두고 엄마는 왜 돌아오지 않는 건지

알아도 알아도 모르는 것투성인데

훔쳐먹는 사과는 왜 이리 달콤한지요

물색 없는 사랑에 

긴 잠의 본능이 눈을 뜨는 밤

가차 없이 내몰린 진실을 감추기엔

포식자의 배후는 너무도 얕습니다

휘어진 등골을 뽑아 둥근 난막을 찢으면

붉은머리오목눈이 갓 나온 싱싱한 울음

충실한 본능이 몸집을 키우는 사이

누룩뱀 한 마리 느릿느릿 풀숲을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