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초록의 어두운 부분 / 조용미

주선화 2024. 6. 18. 07:59

초록의 어두운 부분

 

-조용미

 

 

빛이 나뭇잎에 닿을 때 나뭇잎의 뒷면은 밝아지는 걸까

앞면이 밝아지는 만큼 더 어두워지는 걸까

 

깊은 어둠으로 가기까지의 그 수많은 초록의

계단들에 나는 늘 매혹당했다

 

초록이 뭉쳐지고 풀어지고 서늘해지고

미지근해지고 타오르고 사그라들고 번지고

야위는, 길이 휘어지는 숲가에 긴 나무 의자가 놓여 있고

 

우리는 거기 앉았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처럼

 

긴 의자 앞으로 초록의 거대한 상영관이 펼쳐졌다

초록의 음영과 농도는 첼로의 음계처럼 높아지고

다시 낮아졌다

 

녹색의 감정에는 왜 늘 검정이 섞여 있는 걸까

 

저 연둣빛 어둑함과 으스름한 초록 사이 여름이

계속되는 동안 알 수 없는 마음들이 신경성 위염을 

앓고 있다

 

노랑에서 검정까지

초록의 굴진을 돕는 열기와 습도로

숲은 팽창하고

긴 장마로 초록의 색상표는 완벽한 서사를 갖게 되었다

 

검은 초록과 연두가 섞여 있는 숲의 감정은 우레와

폭우에 숲과 나무들이 한 덩어리로 보이는 것처럼

흐릿하고 모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