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콜리플라워 / 이소연

주선화 2024. 6. 25. 08:38

콜리플라워(외 1편)

 

-이소연

 

 

콜리플라워가 암에 좋다기에 사 오긴 했는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 꽃양배추보다는 사람들이 도 좋아" *

댈리웨이 부인은 이 말을 다른 말과 헷갈리고

나는 이 말을 누가 했는지 헷갈린다

 

조난당한 사람들이

들판에 쌓인 눈을 퍼 먹는 장면을 봤다

콜리플라워 맛이 난다

 

진동벨이 울린다

암 걸린 애가 커피 가져와

암에 걸리면 맘에 걸리는 말이 많다

아픈 건 마음밖에 없네

눈 뭉치 속에 숨겨 놓은 돌멩이를

믿고 싶다

흰빛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내가 한 말들이 맘에 걸려 있다

아파트 화단에 10층에서 떨어진 이불이 걸려 있다

 

엄마가 동영상을 보냈다

나의 여인이 어쩌고저쩌고하는 트로트 음악이 깔리고

꽃을 찍은 사진 위에 수놓은 건강 상식

첫 페이지는 오이와 양파를 꼭 먹으라는

 

이런 건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거야

 

나뭇가지가 휘어지는 밤

흰 눈을 퍼 먹는 기분으로

도영상을 끝까지 본다

 

*버지리아 울프 「댈리레이 부인」, 최애리 옮김.

 

 

 

오목놀이

 

 

오목은 사실 탱고 춤이야

너와 내가 발끝을 들고 싸우는 춤이야

 

봄꽃 피는 몽동해변 위에서

너는 흰 돌, 나는 검은 돌이 되었지

 

검은 물새는 흰 알을 낳고

흰 물새는 검은 알을 낳는 몽돌해변에서

필요한 것은 사랑의 말이라고 믿고 싶어

 

밤과 낮이 나누어진 것도

저 오목놀이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몰라

 

돌을 놓을 때마다

작은 파도를 벼린 모서리로 생각했어

 

왜 모서리가 둥글까

오목은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야

너와 내가 주고받는 노래야

그러니까

잘게 갈라치는 돌싸움이라고 부르지 마

 

오늘 나는 흰 돌을

오늘 너는 검은 돌을

호주머니 가득 주워 왔지

 

나와 너는 더운 숨을 불어 넣듯

툭툭, 흰 돌 하나 놓고 검은 돌 하나 놓고

자유로운 다섯을 위해

뒤꿈치를 그리듯 툭툭, 한개의 세계를 빚었지

악담과 비난마저 돌 속에 가두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