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얼굴 위의 이랑 (시집 제목) / 주선화
주선화
2024. 7. 24. 08:40
섬망 (외 1편)
-주선화
구순 어머니 만나러 가는 길에
까마귀 한 쌍을 만났다
고속도로 중앙선에 움직임이 없는
어린 까마귀를 물고 날아가려는 큰 까마귀
움직임이 더뎌서
백미러는 그 오후를 질기게 끌고 있었다
순식간에 스치고 이내 멀어졌지만
가끔 우리를 어린 날로 데려가는 어머니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낯짝이 가렵다 눈도 안 보인다
아이가 되어 투정을 부리고
우리는 망연히 언니도 되었다가 남편도 되었다가
나이 들어 먹이를 구할 수 없는 부모를 위해
까마귀는 먹이를 물어다 봉양한다는데
한 달에 한 번 찾아가는 우리가 내미는
맛있는 사탕도 쓰다 하고 참외도 안 먹는다고 하는
어머니가 제일 기다리는 건
저 따뜻한 봄날 햇살 한 줌 따라
삽짝문 열고 선바람으로 찾아가는
먼 우리 집
지랄 지랄
어두운 거리를 헤매다 잠시
돌아온 맑은 정신을 붙들고 있다
엄마 엄마 내가 누군지 아나?
봄빛에 노란 한 떨기 꽃같이 누워서는
ㅡ 지랄하네
말 같지도 않은 말 하지 말라는 듯 같잖다는 표정으로
닫힌 꽃봉오리 살짝 입을 벌리듯
엄마 엄마 엄마!
막내딸이 또 소리쳐 부른다
내가 누군지 아나?
ㅡ 지랄 지랄 용천 떠네!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
지랄 버릇하는 줄 알까?
생채기투성이 산수유꽃은 어제와 다른 날씨에
지랄방광하며 용천 떨 듯 피고 지는데
지랄도 풍년인데
층층나무 목 산수유에게 이제 저 소리 들을까?
노랑노랑 게워 내듯 우렁우렁 피는 꽃
지랄하며 피는 꽃
참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