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사과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 / 주선화
주선화
2024. 7. 31. 11:09
사과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 (외 1편)
-주선화
사과는 사과의 유전자로 찬바람 속에서 더 붉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죄 지은 여자처럼
얼굴이 붉어지기 전 미리 사과하는 사과처럼
진실하지 못해서
두 손 모으고 공손하게
포장하지 못해서 미안한,
*이미화의 시 <사과의 힘>에서 가져옴.
우리 집 하마
옷장 속에서 냉장고 속에서 목마른 호기심이 빨아들이는
푸른 초원을 건너가고 싶은 한 덩치가 여름 밖을 꿈꾸는
주문을 외우네 노래처럼, 자장가처럼 그 큰 입으로 아침
물안개보다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작은 꼬리를 흔들
며 누 떼를 기다리네 기다리면서 목마른 몸을 진흙탕에
숨기네 잠수함 잠망경처럼 두 눈만 점점 커지는 하마가
벌컥벌컥 물을 마시네 출렁출렁 수위를 높이는 우리 집
배고픈 저 덩치가
*주선화 시집 <얼굴 위의 이랑>
ㅡ현대시 기획선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