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재생 / 박소란

주선화 2024. 10. 12. 08:53

재생

 

-박소란

 

 

단추를 모으는 사람이 있다

 

헌 옷을 버리기 전

단추를 하나하나 떼어 작은 상자에 넣어두는

사람

 

자세히 보면 좀 징그럽잖아 꼭 누구누구 얼굴 같고, 눈만 댕그랗게 남아서

겁이며 원망을 잔뜩 품고서

나를 보고 있잖아 이상하게 집요하게

 

왜 이런 걸 모아요? 하면

글쎄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하고 답할까

 

그러나 사실

단추를 모으는 사람은 벌써 죽었다

단추가 필요한 시간이란 영영 오지 않을 테니

 

단추는 살아 있다 아직도, 진짜 징그러운

진짜란 이런 거겠지

단추와 단추 사이

미처 식지 못한 한가닥 머리카락을 발견하는 일 한참을 들여다보는 일

 

여기 있었구나, 바로 여기

 

조그만 비닐에 싸서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은 속에 찬찬히 묻어둔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또다시, 나는 징그러워지고

 

단추가 없는 옷 단추가 없는 가방 단추가 없는 사람, 사람들에게 단추를 하나씩 나눠준다면

 

왜 이런 걸 모아요?

고개를 갸웃거리겠지 어딘가 깨름칙한 듯

퀭한 눈을 살피고 서둘러 자리를 뜨겠지

 

달랑거리다 툭 떨어져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굴러가는

단추, 그 자리 그대로 굴러오는

 

철퍼덕 내 앞에 주저앉는

 

아, 처음부터 단추 같은 걸 모을 생각은 없었지만

자꾸만 아른대는 얼굴을

목까지 끌어다 채울 생각은 더더욱 없었지만

 

* 박소란 시집 ㅡ <수옥>

ㅡ 창비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