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초록의 어두운 부분 / 조용미

주선화 2024. 10. 30. 11:10

초록의 어두운 부분

 

- 조용미

 

 

빛이 나뭇잎에 닿을 때 나뭇잎의 뒷면은 밝아지는 걸까 앞면이

밝아지는 만큼 더 어두워지는 걸까

 

깊은 어둠으로 가기까지의 그 수많은 초록의 계단들에 나는 늘

매혹당했다

 

초록이 뭉쳐지고 풀어지고 서늘해지고 미지근해지고 타오르고

사그라들고 번지고 야위는, 길이 휘어지는 숲가에 긴 나무 의자가

놓여 있고

 

우리는 거기 앉았다

고도를 기다리며

두 사람처럼

 

긴 의자 앞으로 초록의 거대한 상영관이 펼쳐졌다 초록의 음영과

농도는 첼로의 음계처럼 높아지고 다시 낮아졌다

 

녹색의 감정에는 왜 늘 검정이 섞여 있는 걸까

 

저 연두빛 어둑함과 으스름한 초록 사이 여름이 계속되는 동안 알

수 없는 마음들이 신경성 위염을 앓고 있다

 

노랑에서 검정까지

초록의 굴진을 돕는 열기와 습기로

숲은 팽창하고

 

긴 장마로 초록의 색상표는 완벽한 서사를 갖게 되었다

 

검은 초록과 연두가 섞여 있는 숲의 감정은 우레와 폭우에 숲의

나무들이 한 덩어리로 보이는 것처럼 흐릿하고 모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