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배내옷 / 한강

주선화 2024. 11. 1. 10:47

배내옷 (소설 <흰> 중에서)

 

- 한강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는 태어난지 두 시간만에 죽었다고 했다.

달떡처럼 얼굴이 흰 여자아이였다고 했다. 여덟달 만의 조산이라

몸이 아주 작았지만 눈코입이 또렷하고 예뻤다고 했다. 까만 눈을

뜨고 어머니의 얼굴 쪽을 바라보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어머니는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아버지와 함께 외딴

사택에 살았다. 산달이 많이 남아 준비가 전혀 없었는데 오전에 갑

자기 양수가 터졌다. 아무도 주변에 없었다. 마을에 한 대뿐인 전

화기는 이십분 거리의 정류장 앞 점방에 있었다. 아버지가 퇴근하

려면 아직 여섯 시간도 더 남았다.

 

막 서리가 내린 초겨울이었다. 스물 세살의 엄마는 엉금엉금 부엌

으로 기어가 어디선가 들은 대로 물을 끓이고 가위를 소독했다.

반짇고리 상자를 뒤져보니 작은 배내옷 하나를 만들 만한 흰 천이

있었다. 산통을 참으며, 무서워서 눈물이 떨어지는 대로 바느질을

했다. 배내옷을 다 만들고, 강보로 쓸 홑이불을 꺼내놓고, 점점 격

렬하고 빠르게 되돌아오는 통증을 견뎠다.

 

마침내 혼자 아기를 낳았다. 혼자 탯줄을 잘랐다. 피 묻은 조그만

몸에다 방금 만든 배내옷을 입혔다. 죽지마라 제발, 가느다란 소리

로 우는 손바닥만한 아기를 안으며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처음에

꼭 감겨 있던 아기의 눈꺼플이, 한 시간이 흐르자 거짓말처럼 방긋

열렸다. 그 까만 눈에 눈을 맞추며 다시 중얼 거렸다. 제발 죽지마,

한 시간쯤 더 흘러 아기는 죽었다. 죽은 아기를 가슴에 품고 모로

누워 그 몸이 싸늘해지는 걸 견뎠다. 더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수의

 

 

어떻게 하셨어요. 그 아이를?

스무 살 무렵 어느 밤 아버지에게 처음 물었을 때,

아직 쉰이 되지 않았던 그는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겹겹이 흰 천으로 싸서, 산에 가서 묻었지.

혼자서요?

그랬지, 혼자서

 

아기의 배내옷이 수의가 되었다. 강보가 관이 되었다.

아버지가 주무시러 들어간 뒤 나는 물을 마시려다 말고

딱딱하게 웅크리고 있던 어깨를 폈다. 명치를 누르며 숨을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