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순식간 접면 / 황인숙

주선화 2024. 11. 11. 16:16

순식간 접면

 

- 황인숙

 

 

마을버스를 내리면서 나는

안태운 시집을 읽고 있었는데

나를 내려놓은 버스가

더운 김을 훅 끼치며

너덧 바퀴 지나갔는데

'문득'에였나 '감각'에였나

참으로 어여쁜 날벌레가 앉아 있었다

무심코 나는 입을 뾰족이 내밀고 훅 불었는데

날벌레는 책장을 꽉 움켜쥐며

참으로 작고 보드라운 날개를

습기를 머금어 살풋 더 보드라운 날개를

솜털처럼 파르르 떨었는데

나는 한번 더

이번에는 더 세게 바람을 불어

참으로 작고 여린 날벌레를 날려버렸는데

잠깐 비 그친 시간

'문득'에인지 '감각'에인지

솟은 듯 나타난

참으로 작고 여린 그 어여쁨을

나는 왜

순식간 어디론가 보내버렸는데